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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의 온도

마케터J_88 2025. 12. 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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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조진웅의 은퇴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한 사람으로서 복잡한 감정에 휩싸였다. 청소년기에 저지른 범죄로 법적 처벌을 받았고,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대중은 법 이상의 것을 요구했다. 그는 결국 연예계를 떠나기로 했다.

 

나는 그가 저지른 잘못을 옹호하려는 게 아니다. 피해자가 있는 범죄였고, 그 상처는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대중이 실망하고 분노할 권리도 충분히 있다. 하지만 이 사건을 지켜보며 드는 불편함은, 그의 잘못 자체보다 우리 사회가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것이었다.

누군가는 매장되고, 누군가는 활동한다

전 모씨와 이 모씨. 둘 다 미성년자 성매매로 물의를 일으켰다. 둘 다 연예인이었다. 그런데 전 모씨는 상대방이 미성년자인지 몰랐고, 이 모씨는 배우 데뷔를 미끼로 미성년자에게 접근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후자가 더 악질적이다. 그런데 전 모씨는 방송계에서 사실상 은퇴 수순을 밟았고, 이 모씨는 여전히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이 불균형을 보면서 나는 혼란스러웠다. 우리는 정의를 실현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그냥 그때그때 분노를 소비하고 있는 걸까?

 

정의란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같은 잘못에는 비슷한 결과가 따라야 하고, 더 큰 잘못에는 더 큰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의 사적 제재는 정의의 원칙이 아니라 '여론의 온도'에 따라 작동한다. 누가 SNS에서 더 많이 회자됐느냐, 어느 시점에 터졌느냐, 대중의 관심이 얼마나 뜨거웠느냐에 따라 한 사람의 인생이 결정된다.

 

이건 정의가 아니라 운이다.

마케터의 고민, 시민의 고민

나는 마케터다. 브랜드가 대중에게 선택받기 위해서는 신뢰가 필수적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안다. 한번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는 건 정말 어렵다. 어떤 브랜드는 한 번의 실수로 영원히 시장에서 퇴출당하기도 한다.

 

그런데 조진웅 배우의 사례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한번 잘못하면 영원히 끝"이라는 메시지가 지배적인 사회에서, 과연 누가 솔직하게 잘못을 인정하고 개선하려고 할까?

 

기업도 마찬가지다. 실수를 투명하게 인정하고 개선하는 것보다, 최대한 숨기고 덮는 게 합리적인 선택이 되어버린다. 어차피 한번 걸리면 끝이라면, 걸리지 않는 게 최선이니까. 그렇게 사회 전체는 더 불투명하고 위선적으로 변한다.

재사회화의 가능성을 차단하는 사회

더 무서운 건 청소년 범죄자들에게 주는 메시지다. "넌 청소년기에 한번 잘못했으니까, 평생 그 낙인을 짊어지고 살아야 해. 아무리 노력해도 소용없어."

 

이 메시지를 받은 사람들이 왜 변화하려고 노력하겠는가? 범죄학 연구들은 일관되게 말한다. 재사회화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 재범 방지에 결정적이라고.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더 안전한 사회를 원해서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지만, 그게 오히려 회복의 가능성을 차단해 장기적으로는 더 위험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

우리가 진짜 원하는 건 뭘까

근본적인 질문을 해보자. 우리는 정말 응징을 원하는 걸까, 아니면 더 안전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원하는 걸까?

 

만약 전자라면 지금처럼 해도 된다. 그때그때 분노의 온도에 따라 누군가를 태우고, 누군가는 그냥 지나가게 두면 된다. 하지만 후자를 원한다면, 우리는 더 고민해야 한다.

 

어떤 잘못에 어떤 결과가 따라야 하는가? 회복의 기회는 누구에게 어떤 조건으로 주어져야 하는가? 시간이 지나면 용서는 가능한가? 법적 처벌을 받았다면 사회적 용서도 고려될 수 있는가?

 

이런 질문들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없는 상태에서, 우리는 각자의 감정과 그때그때의 분위기에 따라 판단하고 있다. 그리고 그 결과는 형평성을 잃은 불안정한 정의다.

다르게 생각해도 괜찮다

조진웅 배우의 사건을 보며 이런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이 때로는 불편했다. 혹시 내가 가해자를 옹호하는 건 아닐까? 피해자의 아픔을 외면하는 건 아닐까?

 

하지만 가해자에게도 회복의 가능성을 고민하는 것과 피해자의 아픔을 외면하는 것은 다르다. 형평성 있는 제재를 요구하는 것과 가해자를 옹호하는 것은 다르다. 재사회화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과 범죄를 정당화하는 것은 다르다.

 

우리는 더 복잡하게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가해자를 비난하면서도 불균등한 사적 제재를 문제 삼을 수 있어야 한다. 피해자에게 공감하면서도 가해자의 재사회화를 고민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당신도 이 사건을 보며 비슷한 불편함을 느꼈다면, 당신은 틀리지 않았다. 오히려 당신은 우리 사회가 더 성숙해지기 위해 필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정의는 뜨겁게 끓어오르는 분노가 아니라, 일관되고 형평성 있게 유지되는 온도에서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그 온도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우리 모두의 고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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